점여행, 선여행.

2009. 5. 14. 23:44journal

먼 옛날, 이런 심리테스트가 있었다. 꽤나 써먹고 다녔다. 간단한 거다.
당신은 여행을 간다면 어떤 여행을 가겠습니까?
다양한 답이 나온다. 한창 운동권 끝자락에 머물러있던 한 친구는,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베낭을 매고 다녀보고 싶다고 했고, 어떤 친구는 일급호텔로 유럽을 다녀보고 싶다고 했다.

답은 짐작했던 그대로다. 삶은 여행에 많이 비교된다. 답은 그 여행이 자신이 원하는 삶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근거없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지구에는 지구에 사는 인구 수 만큼의 여행방식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방식은 어떤지 각자 생각들 해보시고.

내 경우는... 자세한 건 빼고... 여행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풍경 중심의 관광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혹은 보며) 어떤 내적인 경험을 했는가이다. 이 경험에는 또한 밀도의 다름이 있다.

서론이 거창했는데, 그냥 이번 여행에서 받은 짧은 느낌 같은 걸 주절거려 보려는 거다.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을 꽂아놓고 어딘가를 향하는 것. 그건 여행이라기보다 점찍기가 된다.  길을 간다는 느낌은 사라져 버리고, 그냥 어디까지 가서 차를 멈추고 그것을 돌아보고 다른 곳으로 차를 통해 간다. 이 이동시간 중 남는 것은 주로 연료비 영수증과 톨게이트비 영수증...말고는 없다.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어딜가나 다 비슷하다.

제주도에서 특히 이런 느낌이 강했는데... 차를 렌트하고 관광지 지도에 나온 곳을 네비가 일러준대로 국도를 타고 따라다닌다는 것. 만장굴이니 성산일출봉이니 용두암이니 하는 곳들...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울타리 둘러치고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어대는, 그리고 나도 사진 한 장 찍고나면 그만인 그런 관광지였다. 제주도가 무엇이다라고 가슴에 담을만한 것이 없었다.  

정작 내가 제주도에서 가장 가슴이 뛰었던 것은 지도를 보며 더듬더듬 찾아가 달렸던, 바람이 무섭게 불고 파도가 치는 해안도로였다. 포장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제방과 바다. 사람들이 그 옆에서 살고 있는... 한라산에서의 경험 또한 좋았다. 밑에서 볼 때는 흐르는 안개였던 곳으로 달려들어가, 그 안개를 뚫고 한라산을 자동차로 넘으며 산냄새를 맡았다. 그런 경험들이 나에게는 강렬했다.

점은 점으로 밖에 남지 않는다. 진짜 여행은 마음으로 선을 긋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 느끼는 경험의 진하기만큼 지도에 선을 긋는 거다.

이렇게 온 여정을 마음에 새길 수 있는 최고의 여행방법은? 아마도 걷기일 것이다. 그 다음은? 자전거다. 길 한땀한땀을 내 몸으로 느끼면서 가는거다.

蛇足.
먹는 얘기가 빠졌는데... 그것 또한 상당히 중요한 얘기이므로 나중에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