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스포일러 있을지도)

2007. 10. 11. 22:21film



(꽤나 느낌이 강한 장면으로 기억되어 위 사진을 골랐다. 어떤 장면인지 궁금하신 분은 영화 보시길.)

요즘 연애를 다루는 영화들. 너무 짜증난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광고가 나왔던 '어깨 너머의 여인'이 딱 그렇다. 하는 말들도 그렇고  너무 지겹고 뻔한 대사들에 캐릭터들이었다. 가볍게 섹스하고, 연애하고, 헤어지고, 관계가 꼬이고 하는 것들을 '쿨'하게 잘 푸는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세태가 그러느니 당연하다 어쩐다하는 얘기들은 하지말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아니다. 영화가 대중의 인식지평을 앞석가지는 못할망정 뒤따라가서 어쩌자는 거야. 진짜 세태가 그렇다면 그런 뻔한 얘기들을 뭐하러 극장가서 보겠는가. 암튼.  

몇 년 전 한동안 '쿨'하다는 단어가 유행했던 것 같다. 건조하고, 가볍고, 마음주지 않고, 육체적으로 자유롭고... 연애에 관해서는 대충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솔직히 당시에 이 단어를 싫어했었다. 그건 그냥 멋지게 보이려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단어로 자신을 포장하는거지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릴수록 뭘 잘 모르면서 이런 말들을 나불댄다고 생각했다. 뭐... 나 올드한 인간 맞다. 별로 쿨하지 않다. 암튼.

뭐 이런 잔소리들에 이어서 이 영화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이 영화는 요즘 보기드물게 사람의 '진심'과 '헌신'(쓰면서도 정말 오랜만에 써보는 단어라는 느낌이 팍!)에 대해 다룬 영화다. 명수도 은희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냥 명수의 진심이 변할 뿐이다. 은희는 진심인데다가 '헌신'한다. 그리고 용서까지 한다.

보는 내내 계속 가슴이 먹먹했고, 하루종일 우울해에 빠져있었다. 아무래도 명수에게 동화되었나 보다. 연약한 진심. 거짓. 후회. 혐오... 뭐 이런 것들. 그리고 은희의 헌신적인 사랑(이 단어도 정말 오랜만에 써본다.)과 처절한 울음이 계속 옆에서 왔다갔다 했다.

눈물 쏙빼게 만들 멜러영화로서는 실패했다고 말들 한다. '너는 내 운명'처럼 철철 울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맵고 묵직하다. 허진호 감독님이 제대로 된 멜러영화하나 만드셨다. 그리고 꼭 멜러라고 규정지을 필요도 없을꺼다. 내가 보기엔 '사랑'이 주제는 아니니까.

영화를 만들 때, 트렌드라는 말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깨 너머의 여인'같은 영화는 트렌디함을 표방하지만 진부하게 밖에 안 느껴진다. '행복'은 올드한 모양새이지만 새롭고 리얼하다. 잔머리보다 진심이며, 좋은 작품은 어떻게 해도 드러난다. 囊中之錐 - 주머니 속 송곳.

사족 : 나중에 크레딧을 보니 스탭들은 전부 충무로의 에이스급들이시더구만. 별로 돈 들일 없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꽤 들었겠더라. 그리고 생각해보니 임수정이 주연한 영화는 처음 봤다. 황정민형님이야 뭐 워낙에 잘하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임수정의 연기는 좀 놀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