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ourne Ultimatum. (스포일러 약간)

2007. 10. 11. 21:31film


 
결과적으로는 두 번을 봤다.

내가 지금까지 본 중 최고의 액션영화라 꼽고 싶다. 내용, 주제, 스타일... 다 닮고 싶다. 간단히 말해 '꽂혔다'
정말 이렇게만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ㅡ.ㅡ

전작보다 나은 후속편이 흔치 않다. 그런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다른 감독으로부터 아이덴티티의 바톤을 이어받아 전작을 완전히 바꾸어 넘어선 슈프리머시를 만들어냈고, 거기다 이번 얼티메이텀은 슈프리머시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대단하다. 그리고 질투라면 질투고, 정말 부럽고, 감독으로서 존경스러운 점은 자신의 다큐멘터리적이며 사회파적인 영화스타일을 대형상업영화에 접목시켜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이다. 자신만의 의식과 스타일로, 작가감독으로서도 상업영화감독으로서도 인정받았다. 자유를 얻은거다!    

아이덴티티의 경우, 독립적으로 지금 다시 보아도 만듦새나 지향하는 바가 절대로 나쁘지 않은 영화이다. 본 시리즈가 가지는 특징의 원형이 담겨있다. 이 원형들이 폴 감독을 만나면서 영화는 진화되었다. 아마도 어떤 제작자나 피디가 이 감독을 낙점하고 끌어 왔을텐데 꽤 과감한 프로듀싱상의 결단이었다. 일단 폴 감독은 필모그래피가 대규모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먼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Bloody Sunday'와 'United 93'에 역시 꽂혔었다.

처음 아이덴티티를 봤을 때 놀라웠던 것이 격투장면이었다. 굉장히 리얼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의 '거리'안에 다가가 싸움을 시작하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것은 본 시리즈의 주요요소 중 하나이다. 특징을 따져보자면 간결한 움직임, 스피드, 주변에 보이는 사물들의 적극적 활용, 무술이라기 보다는 싸움기술, 과감함, 그리고 말없음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특징들은 슈프리머시와 특히 얼티메이텀에서 더욱 강해져서 다가온다.

카메라에 대해서 딱 특징지을 수 있는 분명한 한가지. 흔들림. 핸드헬드. 이 스타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무척 싫어하더라. 대충 들고찍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달해야 할 것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다큐에서는 현장의 필요에 의해 들고 찍는것일테고 이것이 현장감을 더할거다. 하지만 영화에서 핸드헬드 기법을 쓰려면 오히려 사전에 굉장히 꼼꼼하게 계산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들고 찍으면서 느낌을 계산해 전달하는 감독의 이 감각... 정말 갖고 싶다.

영화는 건조하고 리얼하며 차갑다. 이 느낌들은 여러가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일단 색깔이 차갑다. 난색 계열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인물들은 웃지 않고 인상을 쓰지도 않으며 말도 많이 하지 않는다. 정서같은것 없이 인물들은 자기를 지키기위해 움직인다. 자애로운 인물도 없으며, 심지어 그 흔한 유머장면 하나 없다. 액션영화에서 흔히 보여주는 돈 많이 쓴 장면 여러번 보여주기 라던지, 고속 촬영같은 것도 절대 없다. 오히려 시간을 아무일 없었다는 듯 축약한다. 오로지 보여주는 것은 현실과 행동... 이 느낌이 좋다.
 
이렇게 분명하게 주인공을 내세워서 가게 되면,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당연히 동화된다. 지금까지 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으며, 이유없이 인명을 해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돌볼 줄 알고, 여자를 사랑할 줄도 아는, 거기다 '강한' 사람이었다. 정말 동화되기 좋은 조건이다. 하지만 영화는 본에게 그냥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결국 '데이빗 웹'이 아니라 '본'으로서의 출발은, 72시간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의 살인이었다는 것. 출발은 결국 자기가 했다는 거다. 뭐 거창한 철학같은거야 아니지만, 냉정하게 주인공의 책임을 직시하는 태도이다. 결론은 약간 감상주의에 빠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얼티메이텀을 보고 아이덴티티를 다시 보게 되면 영화가 말랑말랑하게 느껴진다. 정말 하드해지기는 한 모양이다. 아이덴티티의 맷 데이먼은 확실히 지금보다 젊고 날씬하다. 그리고 본은 좀 더 부드럽고 인간적으로 보인다. 그것을 매력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의 연기에서의 선택인지 연출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본은 분명히 달라졌다. 더 건조하고, 고민하지 않으며, 많이 싸워온 느낌이다. 위 포스터를 선택한 이유가 그거다. 저 클로즈업속의 잔주름들이 더 강하고 리얼하게 다가온다. 나는 지금의 본이 더 매력적이다.

맷 데이먼의 인터뷰라던가 이런 저런 기사들을 봤다. 원래 맷 데이먼은 3편에 출연할 계획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폴감독이 나서면서 함께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에 폴감독이 불러주면 또다시 할 의향이 있다는 말을 한적도 있다. 어떻게 하면 감독이 배우로부터 이런 절대적인 신뢰를 받을 수 있는걸까? 역시 증명되는 실력과 비전이겠지.

(누군가에게 들은 말인데, '역시 많이 본 사람이 제일 강하더라' 라고 하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