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2008. 3. 2. 00:02journal

최인훈의 '화두'의 머리글에 이런내용이 나온다.
"인류를 커다란 공룡에 비유해 본다면, 그 머리는 20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바야흐로 21세기를 넘보고 있는데, 꼬리 쪽은 아직도 19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흙탕과 바위산 틈바구니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짓이겨지면서 20세기의 분수령을 넘어서려고 안간힘을 쓰고있다 - 이런 그림이 떠오르고, 어떤 사람들은 이 꼬리부분의 한 토막이다. -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물론 20세기 끝물에 나온 소설이므로 시간적 배경은 현재와 다르다. 자전거를 타다가 이 구절이 생각난 것은 청계천을 지나갈 때 였다. 온갖 종류의 상가들이 무지하게 길게 늘어서 있고 복잡하다. 길가에 세워진 트럭에는 줄기차게 짐들이 올려졌다 부려졌다 하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닌다. 이 틈을 짐을 많이 실을 수 있게 개조된 짐자전거가 왔다 갔다 한다. 오해는 하지 마시기를. 오늘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니다.

공룡은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이 되는데, 이것이 적절하다는 것은 이 사회에 21세기와 19세기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거다. 문화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활동에 21세기와 19세기가 공존한다. 세계가 빛의 속도로 묶여서 움직이는 이 시대에도, 자전거하나를 가지고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곳에서 운송수단으로서 자전거가 적합하고, 수요가 있으니까 짐자전거들이 있는 걸꺼다. 내가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이 공룡이 정말 커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즉 대가리와 꼬리사이의 거리가 자꾸만 멀어지고 있는거다. '세상의 불공평함'과 '기회의 불평등'에 대해서 궁시렁댈만큼 순진한 시절은 물론 지났다. 그래도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사람들은 너무나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상당부분 '경제력'이다.

부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될 것이다. 그게 이 세상이 지금 흘러가는 방향으로 보인다. 이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며, 나도 살아보려고 아둥바둥하고있다. 부익부 빈익빈은 진리다. 이제.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 다양한 세계들의 엄청난 차이에... 맘이 좀 아렸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