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2007. 8. 16. 00:00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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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고전은 읽기 싫어했다.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다 읽는 책', '개성없는 책'으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정신적으로 좀 특별해지고 싶고, 남들 다 하는 거는 하기 싫어하는 어린 시절의 치기. 뭐 지금도 물론 좀 그렇기는 하지만.

나이 먹어서는 다른 분야들 - 전쟁사, 역사소설, 넌픽션 - 등에 눈이 쏠리면서 고전문학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책은 그 내용도 물론 중하겠지만, 물리적으로 가지는 가치도 크다. 책의 외양과 무게가 전달해주는 육중함을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 좀 무게감 있는 주제의 두꺼운 책들을 잘 사는 편이다. 물론 읽을려면 참 고생한다.

열린책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내놓은지는 꽤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보급판이라고 해야하나? 양장본이 아닌 일반 제본판이 좀 싼 가격에 나왔다. (책 안쪽에 보면 전통적인 사철방식으로 제본을 해서 오랫동안 보관해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자랑질이 적혀있다) 근데 이 책이 꽤 멋지게 나왔다. 거기다가 작가의 이름이 주는 느낌에 확 꽂혀서 몇 권을 질렀다. 무작정 시작하기 뭐해서 검색을 좀 해보았는데, 후기 5대 걸작을 많이 얘기하더라. 그래서 순서대로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그리고 보기만해도 숨이 턱 막히는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이 현재 책장에 꽂혀있다. 물론 순서대로 읽게 될 것이다.

'죄와 벌'은 대학에서 영문학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름이다. 주인공의 이름인 라스꼴리니코프는 책도 읽지 않았는데 어느새 머리속에 들어와 있다. 수업 중 기억나는 내용은 니체의 초인사상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 그리고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연출노트'라는 책에서 이 작품을 영화적으로 장면화 시켜보는 부분이 있다.

읽고난 느낌은 상상했던 것처럼 그닥 어렵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심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드라마가 꽤 격렬하게 일어나서 재미가 있었다. 400페이지 정도의 두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상권의 마지막부터 본격적인 얘기들이 나온다. 가장 인상적으로 와 닿았던 것은 등장하는 이들의 사상적 투쟁들이었다. 자신의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거나 살아가는 방식의 틀을 짜려는 욕구, 그리고 자신의 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한다는 것. 어렸을 적 어떤 시절의 가장 큰 고민이기도 했다.

그리고 라스꼴리니코프의 위험한 사상은 사실... 우리가 은밀하게 맘속에 품고 있는 욕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분명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