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

2007. 9. 14. 00:50film

조금 멀리보면,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시절에 TV가 등장했을 때의 형국으로 보인다. 눈으로 보고 즐기는 영상물이 각 가정에 하나씩 들어앉기 시작하자, 영화는 살 길을 모색하려고 화면을 키우고 입체 영상을 연구했다. 그런 노력들이 영화라는 매체의 특질과 본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영화를 더 발전시켰다.

나는 지금도 TV드라마를 잘 안본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늘 뻔한 내용에 엉성한 비쥬얼과 연출이 싫어서다. 그런데 이게 변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미국드라마는 논외로 치더라도, 우리나라 드라마들도 HD의 발전과 더불어 변화하고 있다. 간혹가다 TV드라마에서 그 때깔들을 보면 참 훌륭하다. ~스페셜이 붙는 다큐들도 마찬가지다.

영화도 HD로 많이 찍고 있다. 극장상영시 HD로 찍어서 필름으로 뜬 경우는 아직 그닥 훌륭하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 상영의 경우는 문제가 엄청 달라진다. 무척 좋다. 필름과는 다르게 무척 날카로운 느낌이 나기는 하지만, 그건 그대로의 장점이 될수도 있고 새로운 미학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화질같은 문제는 그렇다치고, 필름은 근본적으로 그 보존성에서 장점을 가진다고 처음 배웠었다. 없어지지 않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디지털화된 각계각층의 데이터베이스들을 보고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필름은 어쨌거나 물건이기 때문에 스크래치가 생긴다. 하지만 데이터는 디지털스러운 오류들만 피한다면 그럴 일이 없다. 현장확인, 후반작업, 배급, 전송, 저장, 공해문제 등... 너무나 뻔한 얘기들이지만, 영화도 HD와 함께 디지털화되는 거대한 흐름은 계속 될 것이다.

영화의 특징은 일단 돈을 주고 본다는 것, 자발적으로 극장에 갇힌다는 것, 큰 화면, 다양한 방향에서 들려오는 다듬어진 사운드, 관객의 집중도(당연하지, 돈 냈는데), 그리고 내용의 자유로움 등이 될것이다. 이중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화질, 큰 화면이라는 것이었다. 필름 시절에는 드라마와는 만지는 카메라와 조명의 차원이 달랐다. 그런데 이게 달라졌다. 현재 많은 영화들이 드라마와 같은 카메라로 촬영을 해서 극장에 걸고 있다. 영화 한다는 사람들의 자존심 중의 하나인 필름 카메라가 사라지고 있다.

흠.

(일단 기억나는 케이스만) 드라마 '로스트'의 감독이 톰 크루즈가 주연한 '미션 임파서블3'의 감독이다. 마이클 만 감독도 '마이아미 바이스'라는 TV물로 시작했다. '케이조쿠'라는 드라마를 연출한 츠츠미 유키히코감독은 이 드라마의 극장판도 연출했다. (드라마와 영화가 너무나 다른 색깔과 느낌) 드라마던 영화던 어차피 모두 문화이고, 주로 재미를 위해 만들어 진다. 실력있고 재능있는 사람들은 매체를 왔다갔다 한다. 기술적인 문제들에 얽매여서 갈라졌던 2차원 영상물의 매체의 차이가 HD의 발전에 의해 옅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특히나 이 매체의 차이들에 대한 텃세가 심했던 것 같다. 드라마하는 사람들은 영화하는 사람 무시하고, 영화하는 사람들은 드라마하는 사람 무시했었다. 그런데 미국, 일본 등과 같이 달라지고 있다. 한지승 영화감독은 드라마 '연애시대'를 연출해서 호평을 얻었다. 경인방송에서는 기존 영화감독들을 영입해서 사전제작된 드라마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많은 타 방송사나 외주업체들도 이런 기획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일본의 'headgear'가 하는 것처럼, 소설, 만화책,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 게임, 장난감 등으로 이어지는 one source multi use 개념의 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기술적으로 화질의 차이가 심했다면, 이런 것들이 가능했을까? 나같으면 제의가 들어와도 안했을 것 같다.

결국 기술의 발전이 새로운 문화적인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난  유물론자인가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