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육아잡지에 한 페이지짜리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0. 3. 27. 11:30journal


이 글이 그 첫번째. 편집과정에서 많이 줄였다고 하니 잡지에 실린 글은 이것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아기 아빠, 아기 엄마에게도 영화관람을 하라.

 

나는 영화를 만드는게 업인 사람이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시간날 재미로, 취미로 보시지만, 나는 영화를 일로 본다. 물론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사람들이 일이다혹은 일이니까라고 이야기할 때의 뉘앙스는 아니다. 핸드폰 만드시는 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핸드폰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나는 영화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새로운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고, 영화를 빼놓고 보려고 노력한다. 우리 마님도 영화를 매개로 만났다. 둘이서 영화도 많이 보려 다녔고, 시사회도 많이 다녔다. , 생활에 암초가 생기기 전까지 말이다.

집에 이제 6개월에 들어서는 암초가 있다. 분명히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지나치게 닮아서 걱정이 되는 암초말이다. 불쑥 튀어나온 배를 손으로 들고, 미키 루크 주연의 레슬러라는 하드한 영화를 보러다니기도 했던 우리였다. 하지만, 녀석이 나온 이후로 우리 부부의 그런 영화관람은 끝났다. 가끔 여유가 있을 부페에 가던 사치도, 친구녀석이 불러내는 시사회에 공짜라며 휘파람 불며 가던 즐거움도, 멋진 영화를 봤을 때의 벅찬 감동에 둘이서 나누던 이야기도모두 끝났다.

물론 내가 이렇게 우는 소리를 하고 있으면, 집에서 컴퓨터로 보면 아니냐고 말씀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씀이시다. 거기다가 우리 부부는 커플 아이폰인지라, 침대에 누워서도 영화를 있다. 하지만 말씀드리고 싶다. 우리는 영화파일이 아니라 영화 보고 싶은 거라고.

영화를 필름이 아닌 HD 찍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HD카메라를 티브이에서도 사용하면서, 사실 화질을 위해 극장에 간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졌다. 오히려 같은 해상도로 찍은 영상물을 극장에서 확대해서 보면, 확산되고 깨져보인다. 그치만, 영화관객의 수는 줄고 있지 않다? ? 영화의 매력은 화질에 있지 않으니까.

극장의 스크린은 대략 300 정도로 피사체를 크게 보여준다고 한다. 물리적 존재인 사람은 어쨌거나 것에 압도되게 되어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앞에 크게 보여지는 영화는 직접적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런 효과를 극대화 것이 아이맥스이다.) 거기다 사운드문제가 있다. 집에서 아무리 5.1채널 스피커를 갖추어놓고 영화를 본다고 하더라도, 사운드의 공간감은 극장을 따라올 수가 없다. 이런 영상과 음향이 불이 꺼진 상태에서 관객들에게 보여진다. 관객들은 돈을 내고 들어가서 꼼짝도 안하고 일방적인 영상과 소리에 복종한다. 집중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강제된 집중에 호응하여 영화를 관람하고 재미를 느낀다. 영화관의 이러한 특색 때문에,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의 아이큐가 2~30% 올라가는 같다고 부담을 토로한 감독도 있다.

나도 영화관람의 이런 면을 즐긴다. 영화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이러한 이야기는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극장의 다른 특징이 많은 사람이 공간에 모인다는 것이다. 절대로 젖먹이를 데리고 없는 곳이다. 그리고 젖먹이를 떼어놓고 젖을 주는 사람이 있지도 않다. 덩달아 이들을 책임지는 사람인 아빠도 수가 없게 된다. ~~~. 특정영화를 홍보하려는 의도는 없다. 하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인간이, 우리나라의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영화기술의 신기원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얻은 * 못봤다. .

그러다가 문득 묘안이 떠올랐다. 자동차 극장!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동차 극장이 있었다. 상영중인 영화가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떠랴. 영화관람을 위한 최적의 환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치보지 않고 아기를 데리고 가서 있다는 것은 정말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간만의 외출이라고 우리는 나름대로 신나서 갔다. 팝콘도 사고, 앞유리도 깨끗하게 닦았다.

하지만! 우리 따님은 그렇게 적당히 순응하지 않았다. 밖에서 영화를 보려니 당연히 깜깜한 밤이어야 했고, 영화의 사운드는 라디오 주파수를 통해 흘러들어왔다. 시끄러운 싫어하고 깜깜한 싫어하는 우리 따님은 영화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르는 2/3지점에 칭얼거리기 시작해 대망의 라스트씬을 남겨놓은 시점에서 제대로 짜증을 터트리며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차의 헤드라이트를 채로 조용히 차를 몰아 극장에서 나와야 했다. 이제 여기도 못오겠다고 혀를 끌끌차면서

그러고서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쳤다. 우리는 이래야하지? 출산율이 전세계 최저수준인 우리나라에서 아기 낳고 키워 나름 애국자라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데, 우리의 작은 문화생활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곳도 없는거지?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전인류적인 동지애를 느끼는데, 세상은 이런 나한테 이런 작은 즐거움조차 주지 못하는 거지? 타이밍에 다른 나라의 예를 들며 구체적인 정책이나 대안을 제시하면 좋을 텐데, 초보아빠인 나는 그런 지식이 전무하다.

그냥 이런 생각을 해본다. 보통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것은 사실 민폐다. 특히 극장처럼 조용해야 하는 곳에는 말이다. 그런데 모두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그건 괜찮다. 서로서로 당연히 이해하게 되고 다른 아기의 울음에 오히려 미소를 지을꺼다. 누군가, 어디선가 아이의 엄마 아빠들이 모여서 영화를 보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안될까? 영화관람이라는 것이 깜깜하고 시끄러워서 아기들에게 무리가 간다면, 무대와 배우들의 소통이 자유스러운 공연 같은 것을 제공해주면 안될까? 아니면 잠깐 아이를 맡길 있는 믿을 있는 탁아소가 있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애한테 무조건적으로 집중한다고 애가 잘크는 것은 절대로 아닐꺼다. 내가 크고, 계속 크고, 성장해야 아이도 그걸 따라서 큰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떠난 어른에게 있어서 문화생활은 공부다. 아이 때문에라는 이유로 부모가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면, 아이 때문에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기회가 늘게 것이다. 부모가 즐거워야 아이도 즐겁다. 아이가 부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부모에게 있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축복이 되는 사회. 그런 사회는 이런 작은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라고 초보아빠는 영화도 못보러다니는 불만을 거창하게 푸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