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2007. 8. 28. 16:11film




Bloody Sunday. 2002년 작. Paul Greengrass 감독.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 수상작.

1972년 북아일랜드의 데리에서 평화롭게 행진하던 시위대를 영국군 공수부대가 유혈진압한다. 이 영화는 영국군의 불합리한 유혈진압과 이 영국군의 손을 들어준 영국에 대한 저항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분명히? 그 저항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말로 외쳐야 하는걸까? 눈물 쏟으며 음악깔고 감정에 호소해야 하는걸까? 아니다. 이 영화에는 음악이 없다. 그리고 주인공도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이 이 사건의 중심인물들인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완전히 다큐멘터리 같다. 그것도 연출자가 전혀 개입하지 않은.. 주장은 분명히 보이지만, 그 주장은 다른 요소들을 통해서 전달되지 않는다. 오로지 눈에 보이는 사건, 사태 만을 통해서 전달된다. 그리고 영화가 내세우는 입장은 양쪽 중 한쪽만을 보여줌으로서 성립되지 않는다. 양쪽 모두를 다 보여준다. 그리고 연출은 무척이나 현실적이다. 구석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들도 뛰어나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도, 충분히 이 사태의 심각성과, 영화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현실감있게 전달하고 있다. 바로 그 '사건'에만 집중하고 있는 시선이다. 현실의 무게를 작품으로 끌어온다.

이 얘기를 꺼낸 이유는... 뭐 다들 알아채셨겠지만, '화려한 휴가'때문이다. 딱 보았을 때는 정말 생각나는 말이 많았는데 조금 지나고 나니까, 주된 인상만 남았다. 일단 평화로웠던 광주시내에 공수부대원들이 들어오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패는 장면. 그 장면 만으로도 이 영화는 나에게 엄숙하게 다가왔다. 초반부의 주인공들의 억지스런 설정도, 식상한 멜러라인도 다 상쇄되는 순간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이유도 모른채 공권력에 의해서  한 순간에 무시무시하게 박살나는 순간. 그 순간이 실재로 내가 어렸을 때 존재했었고, 그것을 실재로 보았다는 아마도 저랬으리라는 느낌... 이게 바로 현실의 힘이고, 역사의 힘일꺼다. 그러나.

(고생하신거 압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관객이기도 하답니다.) 뻔한 양념공식으로 들어간 조연들. 그리고 뒤로 흘러가면서 자꾸만 흘러나오는 감상주의. 그 감상주의를 극한으로 몰고가는 음악. 죽음의 순간에서도 감상적인 주인공들. 감상에 감상에 감상밖에 보이지 않는 결말. 영화를 보는 내내 계속 불편했었다.

이 영화는 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다. 혹이 이번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면 이 영화는 나오지도 않았을꺼라는 얘기도 있었다. 어렵게 어렵게 광주라는 어려운 소재를,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영화로 만들어 내었다. 인정한다. 하지만 꼭 이렇게 했어야 하나? 전술했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역사절 사실'이라는 것이다. 사실의 힘만으로 우리는 이 이야기를 너무나 강열하게 느꼈을꺼다. 그리고 오히려 쓸데없는 감상을 배제했을때 그 날은 우리 마음에 더 깊이 박혔을 꺼다. 꼭 이렇게 너무나 뻔한 주인공 중심의 영웅담으로 풀어야 했을까? 오히려 이런 억지스러운 영웅주의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들게 만든다. 그날 전남도청에 계셨던 분들이 영웅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과연 영화에서 그려낸 식의 그런 영웅이었을까?

나는 사회를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한 명이다. 우리 사회에서 5.18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 1순위 일 것이다. 그런데... 어째 첫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