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tage point. (스포일러 약간.)

2008. 3. 3. 12:57film



동시간대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여러 관점에서 보여주는 형식을 했던 영화가 뭐가 있었더라? 펄프픽션? 하이눈? 어렴풋이 히치콕 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고.

당연히 눈치 채셨겠지만, 영화는 이런 형식이다. 그리고 배우를 중심으로 한 각각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앞의 관점에서는 보여지지 않았던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그러다가 나중에 결론에 이르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사건이 반복되는 만큼 영화의 구조가 기승전결 식의 강화된 이야기구조를 가지기도 힘들다. 매 관점이 새로 등장할 때마다 똑같은 화면을 봐야하는 관객들은 지겹다고 느낀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이야기가 두번 딱 반복이 되자 한숨을 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만 매도하기에는 좀 아쉬운 감이 있다. 이야기의 구조를 짜맞춰보면 영화는 그 우연이 곤 사토시 감독의 '동경대부'가 생각날 정도다. 개인적으로 우연의 구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우연도 분명히 픽션에서 가질 수 있는 미학의 한 종류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우연이 말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 우연이 우연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잘 숨겨져 있던가, 혹은 분산되어 있던가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뻔히 보여도 그것이 뭔가 다른 감정을 전달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하물며 상업영화에서의 재미라면야.  

위에 언급한 부분은 분명히 가지고 있지만 구조가 취약하지 않다. 워낙 잘 쪼개서 분산을 잘 해 놓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사이의 빈 틈새를 영상들이 밀고 들어온다. 주된 사건인 대통령 저격과 폭파는 다른 관점으로 계속 반복되어 시각적 변화를 주며, 특히 뒤쪽에 등장하는 차량 추격씬은 '본'시리즈에 버금갈 정도라 느껴진다. (사실 더 훌륭할 수도 있겠지만, 편파판정이라 이해해주길. 아무래도 속도감 넘치는 카메라의 흔들림과, 망원렌즈와, 사실감과 훌륭한 컷들의 조합은 그쪽이 원조라 생각된다.) 또 하나의 비쥬얼은 배우들이다. 헐리우드의 특 A급 비싼 배우들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중량급 배우들의 많은 등장은 그대로 하나의 스펙타클이 된다. 이 배우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잠깐씩, 가끔씩 나오는 것만으로도 시각적으로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아~주 예전에, 영화를 보고나면 평가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이 영화는 재미없는데 뭔가 남는게 있는 것 같아", "이 영화는 재밌는데 뭔가 남는게 없어"라는 대사 등이 그것이다. 참 심플하면서도 상업영화의 본질이 뭔가 생각하게 만드는 평이다. 암튼 한참 영화는 재밌게 보고 나왔는데, 남는 감정이 별로 없었다. 참 오래간만에 그런 생각을 해 본것 같다. 물론 한시간 사십분 정도? 신나게 보낼 수 있다. 뭐, 선택은 알아서들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