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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시간여행자.

 

소설 아니다.
당연히 시간여행을 소재로한 소설로 보이겠지만,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어느 시절을 둘러보는, 역사를 소재로 한 책에 붙인 그런 제목도 아니다.

'최초로 타임머신의 비밀을 푼 몰렛박사의 시간여행 정복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사실 그렇게 거창한 이야기도 아니다. 아니, 거창한가?

갑작스레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년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타임머신에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이 발전해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나중에 그가 물리학자로 잘 성장해서 시간여행의 비밀을 풀만한 중대한 이론을 완성한다는 이야기이다. 완전한 자서전은 아니고, 같이 글을 쓴 작가가 있는 모양이다. 이전에 보았던 자서전인 '이것은 자전거 이야기가 아닙니다'처럼 재미를 줄 수 있는 극적기교가 물씬 느껴진다. 어쨌거나 인간승리의 드라마이고 나름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중심축만 보면 너무나 흔한 얘기이다.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물리학은 영어로 Physics이다. 정신이 아니라 존재하는 어떤 物에 대해서 밝히는 학문이다. 나같이 모자란 인간은 작용과 반작용, 교통사고, 당구... 뭐 이런걸 떠올린다. 그리고 사과하면 뉴턴, 아인슈타인하면 상대성 원리(혹은 학습지?), 호킹 박사하면 인간승리, 우주... 뭐 이런 키워드들이 떠오른다. 그 외에는 별로 아는 것 없다. 받게되는 인상은 '참 사람이 알기 힘든 걸 다루는구나, 저들이 저렇게 주장하는게 진짜 일까?, 인간의 우주의 탄생에 대해서 알 수 있을까? 저 양반들은 상상력으로 과학하나?'하는 것들이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물리학이라는 학문이 진짜로 어떤 것인지 조금은 맛을 본 것 같다. 이 박사님이 우울증에 걸리던, 이혼을 하던, 그런 것들은 별 관심없다. 그런 얘기만 있었다면 책을 던졌을 것이다. 이 양반은 나는 전혀 모르는 분야인, 전자공학, 수학, 물리학을 공부해나가며 성장해 간다. 그리고 그 인생의 맥락들을 물리 분야의 다양한 학문적 성취나 이론과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새발의 피이겠지만, 이들이 물리학을 공부하고 발전시키는 방향은,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세계의 여러 物들과 힘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알아나가는 것이었다. 그 학문은 단순히 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진짜 세계의 껍질을 한 꺼풀씩 벗겨나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의 문/이과 과목분류로서는 정말 나하고 먼 과목일 뿐이었는데, 실제로 이 물질세계에 대해 알아나가는 일은 수학과 더불어 철학에도 무척 닿아있었다.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가닥을 잡아가는 매력에 책을 재밌게 읽었다.

잘 이해하고 끄적거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시간여행의 원리는 이렇다. 물체는 질량에 따라 끌어들이는 힘을 가지며, 이것을 우리는 중력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어떤 '장'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뉴턴 이전의 세계관에서는 오로지 질량이 있는 물체만 이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에 이르러서 빛에도 중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원통형으로 레이저를 광속으로 쏘아주게 되면, 이 원통안에서는 빛에 의해 어떤 중력장이 생기게 된다. 이 장이 서로 간섭을 하다보면, 이 원통 어디선가 '닫힌 시간 고리'가 생기게 되고 이 고리는 과거와 미래를 연결 할 수 있다. 일단 빛이 쏘아지고 나서 10년동안 그 빛이 계속 되었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간다면 이 사람은 그 빛이 시작되었을 때, 그러니까 10년전으로 시간고리를 통해 넘어갈 수도 있게되는 것이다. 즉 현재로서는, 현재에서 과거로 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현재로부터 빛을 쏘기 시작해 미래에서 현재로 (미래입장의 현재에서 과거로)오는 것만 가능하다. 뭐 개념이 이렇다는 건데 너무 믿지는 마시기 바란다.

꾸준히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이 양반이 말하는 중력, 시간, 빛에 대해 어렴풋한 개념은 잡게 된다. 정말 놀라웠던 것은 책상 위 탁상공론으로만 느껴지는 이런 것들이 인공위성을 통해서 실험되기도 하고, 이 빛의 개념은 레이저를 만들어 내는 등 현실생활을 바꾸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쯤에 시간여행의 딜레마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이런 주제들은 사람들의 이론이나 상상을 통해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표현된 것들이다. 그냥 내가 기억나는 대로 읊어보자면, 이연걸의 '더 원'이라는 영화는 다원우주가 뚫렸을 때를 다룬 것이고, 터미네이터나 백투더퓨쳐, 그리고 프리퀀시, 나비효과 같은 영화들은 현재의 어떤 힘이 과거로 가서 과거에 영향을 미쳐 현재를 변화시킨다는 단일우주이론에 기반하고 있다. 그리고 호킹이 주장했다는 연대기보호가설은 자연계의 힘이 시간을 거스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타임머신은 만들어질 수 없거나, 아니면 만드는 즉시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인데 이건 줄거리를 꾸미기에는 재미가 없는 이론이다.

새로운 분야를 살짝 들여다 본 것 같아서 읽은 보람은 있다. 그리고... 사실 아닌 척 하지만, 이런 책을 읽고나면 그들의 열정과 노력하는 능력에 질투를 느낀다. 이번 경우는 지력도 포함해서.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