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떠 있는 포스터 중, 이것이 가장 눈에 띈다. 프렌치 버젼인가? 굉장히 탐미적인 포스터다. 신비감을 주고 눈길을 끌기에는 좋겠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글쎄...
복고컨셉. 이 버전도 뭐...
우리나라 정식 포스터인 듯 한데. 그닥 뭐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20세기 최악의 살인사건'이라는 카피, 여자의 양 입술 끝을 루즈로 길게 칠해 연장한 이미지등을 보면, 이 영화의 이야기와 홍보는 실제 있었던 그 살인 사건을 끌어들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영화는 실제 사건과 별 상관이 없다. '블랙 달리아'는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게 아니라, 실제사건을 소재로 사용한 제임스 엘로이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뭐 늘 그랬듯 영화 내용을 얘기할 필요는 없을 듯 하고.
다층구조를 가진 잘 짜여진 스릴러이고, 내용적으로도 인간 내면의 유약함과 어두움을 잘 파고든다. 보고나면 울적하고 찝찝한 것이, 어두운 스릴러의 맛이 잘 살아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을 퍽 좋아학긴 한다...만,
이것저것 문제삼을만 한 것들이 보인다. 먼저 다층구조라는 점. 이 다층(多層)이 지나치게 많다. 메인플롯과 서브플롯의 구분이 모호하고, 같은 무게를 가지고서 평행하게 진행되는 플롯과 이야기들이 너무 많다. 나중에 관객이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중심되게 놀라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숨겨진 사건들이 계속 빵빵 터져나온다.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이나 피해자의 감정도 잘 전달되지 않는다. 감정을 느껴야 할 사건과 인물이 모호하거나 너무 많게 느껴진다. 결국은 전체적으로 산만하다는 느낌으로 치닫는다. 중간강도의 산만한 느낌이 지속되면? 지루할 뿐이다. (영화 내내 몸을 뒤트는 관객을 많이 보았다.)
거장이자 노장이신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불경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너무 자신의 스타일에 집착하신 것 같다. 좋게 말하자면 이 감독의 낙인이 확실히 찍혀있고, 나쁘게 말하자면 올드하다. 물론 올드한 것도 다시 재해석해서 멋진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감독의 스타일이 지나치게 많은 사건과 어울려 영화를 산만하게 만든다라는 것이 주된 느낌이다. 익숙하게 봐왔던 그의 스타일이 장점이 되지 못한다(스테이크 아이즈에서 많이 나왔던 스테디캠을 통한 카메라의 유영, 주변 사물을 이용한 주인공들의 정서의 직접적인 시각적 투영, '사이코'에서 보았음직한 빛과 어둠의 극명한 차이를 통한 인물의 표현(혹은 숨김), 거기다가 '언터쳐블'을 연상시키는 계단장면(전함 포템킨도?)과 고속촬영 등...)
그래도 보면서 와! 했던 부분은 그의 이전 스타일대로 카메라가 움직이는 롱테이크에서의 인물들과 동선과 연출과 타이밍 들이다. 인위적인 정교함이 느껴진다. 인위적인 자연스러움도 어렵지만 인위적인 정교함도 정말 어렵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예전 영화들일수록, 혹은 오래된 감독들일수록 이런 면에 강한 양반들이 많은 것 같다.
원작은 무척 재미있었을 것 같다. 기괴하고 우울하고 비정한 느낌으로...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질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역시 이 부분이다. 소설과 영화의 느낌은 절대로 같을 수가 없다. 영화는 장편 소설의 길이와 느낌과 플롯을 절대로 다 담아낼 수 없다. 또한 읽을 때 상상되는 각 장면들의 조합만으로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수는 더더욱 없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미학적으로, 산업적으로, 현실적으로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어떻게하면 이 작업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그 정답이 있다면 내가 그 답을 사고 싶다. 다만 지금까지 분명히 느낀 점 하나는 영화는 소설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재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시각적일수도, 청각적일수도, 내용적일수도, 관점적일수도 있다. 영화는 원작에서 벗어나서 독립된 작품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랬던 작품들만이 훌륭한 영화로서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