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워" 를 둘러싼 논쟁. 에 대한 내 생각.

2007. 8. 11. 15:32film


논쟁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했는데, 과연 논쟁이 맞기는 한건지...

포털사이트에 '디 워'라고만 쳐 넣어도, 엄청나게 많은 의견들과 싸움들과 기사들을 볼 수 있을테니 나까지 굳이 한마디 더 하는 것이 뭔가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영화를 만드는 한 사람으로써 개인적인 생각을 좀 적어보자면...

개인적으로 이 일의 매력 중 하나는, 절대로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오는 작품 하나하나가 다 최소 이상의 새로움을 지향한다. 제작 중 부딪히는 모든 상황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새로운 상황들이다. 스탭들은 이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며 각자의 역할을 하고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잘 만들어진 영화이던, 정말 봐주기 힘들정도로 허접한 영화이던, 만드는 데 들어간 노력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모든 영화만들기는 전쟁같은 개고생의 과정이다. 

근데... 관객들이 이런 고생의 가치를 따져 영화를 봐주나??
영화하는 사람들이 뭔가 거창하게 포장될 때가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정말 부럽다는 둥... 정말 에너지가 넘쳐보여 좋다는 둥... 자유롭게 살아 좋겠다는 둥... 혹은 왜 사서 그 고생을 하냐는 둥...  뭐 어찌보면 맞는 말일수도 있겠으나, 사실 똑같다. 자본이 투자되고 스탭들은 자신이 가진 실력과 경험과 노동력을 팔고 그것을 통해 상품을 만들어 낸다. 영화를 찍으며 닥치는 상황들과 전쟁을 벌이는 것? 당연히 해야할 업무 중 일부이다. 도대체가 전쟁같지 않은 삶의 현장이 어디 있나. 암튼 이 결과물이 시장에 나가 극장에 걸린다. 이 결과물이 돈 주고 살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면 관객들은 돈을 주고 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뭐. 안사는 거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있던 고생은 사실 영화가 지니는 작품으로서의 본질적인 가치에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리고 끼치지 말아야 한다.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제작자가, 감독이, 스탭들이 무슨 개고생을 했던 그게 영화랑 무슨 상관인가? '디 워'를 둘러싼 싸움에서 가장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이런 것들이다. 심형래 감독이 무슨 개고생을 했던 그것이 영화의 가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영화가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것이고, 엉성하고 허접해 보이면 안 보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끼어드는 인간 심형래에 대한 동정과 애국주의는 뭔가. 그리고 왜 그런것이 영화를 꼭 봐야만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는가.

아마도 이송희일감독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의 주된 정서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고생은 모두 다 한다. 그런데 그 고생을 전면에 드러내는 건 정말 좀 아니지 싶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고생에 반응할 이유도 없다. 이 냉엄한 시장에서 언제부터 그런게 통하기 시작했나. 오히려 300억이라는 엄청난 돈을 땡긴 심형래 대표의 사업적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또 영화의 질에 대한 얘기들이 많다. 뭐 결론은 위에서 얘기했다.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재미있게 보면 되는 것이고, 엉성하고 허접해 보이면 안보면 되는 것이다. 일단 영화가 시장에 뿌려졌을 때, 그 영화의 가치는 사회적으로도 형성되고, 개인적으로도 형성된다. 많은 사람들이 정말 허접하게 본 영화가 개인적으로는 엄청나게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많은 사회적 울림을 만들어낸 영화가 개인적으로는 너무 싫을 수도 있는거다.

그전부터도 그랬지만, 진중권씨가 등장한 100분 토론 이후로 어째 싸움의 구도가 '평론가 VS 네티즌' 이런 식으로 확 몰아져 간다. 평론가 쪽은 여전히 '이 영화는 매우 후졌으며, 근본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라는 거고, (굳이 이름 붙이자면) 네티즌 쪽은 '재밌게 본 사람이 많은데, 평론가들이 영화를 깎아내리고 있다. 건방지게...'라는 정서로 요약될 듯 싶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두 가지 정도이다.

진중권씨처럼 문화평론가이던 아니면 영화평론가들이던, 그들은 영화시장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체의 현장과 시장을 따로 가지고 있다. 그들의 진정한 일은 극장에 걸린 영화에 별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현장에서 영화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며 나름의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면 된다. 그렇지 않은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 말 그대로 참고만 하면 된다. 그들의 한마디에 발끈하고 일희일비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세상으로 끌어내 키워주는 꼴이 된다. 사실 진중권의 글도 그냥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고 하더라. 영향력이야 있겠지만 무슨 성명도 아니고, 선언문도 아니다. 그냥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진중권씨의 말에 동의하는 것 중 하나인데, 이 '공적인 광분'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둘러싼 논쟁 중 재미있는 점은 영화의 내용에 대한 것이 그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의 질에 대한 이런저런 사람들의 평가들에 대항해, 관객들이 문화적 취향에 대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기억해야 할 것 한가지. '디 워'는 주제와 내용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다. 이건 영화적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영화의 '상품'이라는 특징을 최대한 밀고간 상품이다. 이 상품을 사고 싶은 사람은 사고 사기 싫으면 안 사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심형래 감독한테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을만한 작품을 기대하는게 아니지 않은가. 아이들이 이 영화를 많이 좋아한다고 한다. 아이들 시장의 특징이 꼭 부모들까지 끌어들여 소비자로 만드는 것이다. 부모들도 애들과 함께 어느정도 재밌게 볼 수 있고, 가족단위의 관객들을 많이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잘 포장된 훌륭한 상품 아닌가.

내 결론은 이 영화에 대한 논쟁이, 이 영화가 상품으로서 가지는 가치 이상으로 쓸데없이 커졌다는 거다. 얼마전 트랜스포머를 봤다. 이야기? 많이 허접하시다. 변신하는 외계 로봇 종족이 지구에 와서 악한 변신로봇종족으로부터 착한 지구인을 수호해 싸운다.. 참도 끌리는 시놉시스다. 근데 결과적으로... 난 정말 감동하며 재미있게 봤다. 어릴 때 트랜스포머 만화를 본 기억은 없다. 그러나 다른 수많은 거대 변신로봇들을 보며, 감정이입하며, 꿈꾸며 자랐다. 거대변신로봇은 많은 남자아이들(지금은 아저씨들)의 로망이었다. 나는 정말 그것들이 현실에서 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근데 그게 눈앞에 진짜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 냉엄한 현실? 정치적 목적성? 고독한 인간의 내면? 다 필요없다. 그냥 즐기러, 내 어린시절의 판타지를 보고 싶어서 간다.
이런게 상품이다.

상품은 상품으로 보자. 그리고 인간사에 대한 뭔가 깊은 의미를 담아낸 훌륭한 작품이 있다면, 그건 또 작품으로 보자. 결국 다 살자는 얘기 아닌가.